못된 건축

못된 건축

못된 건축

이경훈

어떤 건축이 좋은 건축일까?
시민의 행복을 가로막는 서울의 대표 건축과 도시 건축의 조건에 대하여

어떤 건축이 좋은 건축일까? 우리는 살면서 늘 어떤 건물에 대해 말한다. 차창 밖의 빌딩이나 동네의 신축 건물, 언론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건물들에 대해 한마디씩 평한다. 가령 광화문 광장, 서울 시청이 생겼을 때도 그랬고 최근 DDP를 둘러싼 논란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기준으로 건축을 평하는 것일까? 단지 외향이 멋있거나 노출 콘크리트와 하이테크 기법으로 만들면 좋은 건축일까? 많은 사람들과 전문…

 

건축 관련 책만 10권 정도 읽었다.

건축 주제의 책이 프로그래머인 나에게 주는 감흥이라면, (1) 나 혼자 잘만든다는게 아닌 주변과의 관계를 고려하게 한다거나 (2)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지 좀 더 긴 호흡으로 생각하게 한다거나 (3) 현대의 기술이 미래에는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 등등 무언가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경험하는걸 만든다는 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다.

무엇보다도, 건축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재미라면 이제는 건물을 볼 때 간판이 감춰놓았던 건물의 온전한 모양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거다. 실로 다양한 모양들을 관찰할 수 있게 된 나는 거리를 걸을 때 볼게 많아져서 좋다.

이 책은, 이 전에 읽은 책 빨간 도시와 합본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동질감이 있다. 빨간 도시가 총론이라면, 이 책은 각론이랄까. 우리나라의 배려 없는 건축물들이 도시와 문화를 망치고 있다는 주제 하에 두 책은 각자의 논리를 펼친다.

빨간 도시가 좀 더 철학적인 접근을 하면서 예시를 든다면, 이 책은 “떠든 놈 너! 너! 나와”라고 하듯 건물 몇 개를 콕 찝어서 샅샅이 분석한다.

세상의 모든 형태는 세 가지 유형에서 기원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자연의 유형이다. (…) 둘째는 시계, 자동차 같은 기계적 원리가 표출되어 만들어내는 인공적, 기계적 형태다. (…) 그러나 이 두 가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세 번째 형태 요소가 있는데, 바로 도시다. 도시는 분명 사람이 만들었지만 사람의 의지대로 통제할 수 만은 없는 유기성과 생명을 가지고 있다. [72-73p]

이 책은 건축물 하나하나를 비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공동체를 살찌우는 도시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반례 모음집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쇼핑몰’이라는 말이 대형 매장보다는 전자상거래를 통칭하는 용어로 먼저 익숙해진 것이 흥미롭다 [151p]

아하! 그렇구나. 우리나라는 땅이 좁아서, 인터넷이 너무 빨리 좋게 깔려서 그런가보다.

전원도시가 저밀고층이라면, 고밀저층의 건축이 도시적 해법이다. [214p]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건물은 가급적 인도에 가깝게 열지어 있어야 한다는거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치안의 역할도 하고 조명의 역할도 하고 소상공인의 터전이 되기도 하고 걷고싶은 거리가 되도록 한다는거다.

땅콩집은 개량 한복이다.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개성 있는 삶의 공간을 누려보겠다는 의지를 건축적으로 구현한 사례이며, 전통적인 주거 공간을 우리 시대에 맞게 해석하려는 노력이다. 물론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225p]

땅콩집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저자는 땅콩집이 아파트의 대안이지만 이 역시 울타리를 쳤다는 점에서 공동체를 살찌우게 하지는 않는다고 비판한다.

혹자는 신이 죽은 현대사회에서 예술이 종교를 대신한다고 한다. 그럴 지도 모른다. 미술관과 음악당은 교회를 대체했다. 공연이 예배를 대체하고, 시민들은 문화 예술 시설에서 모이고 만나며 교류하고 헌금을 낸다. 유럽의 옛 귀족들이 교회에 기부했듯, 현대의 부자들은 오페라하우스 벽면에 자기 이름을 새기기 위해 기부를 했다. [248p]

예전에 읽은 책에서는 도시의 쇼핑몰이 중세시대 교회의 역할을 한다고 했다. 주말마다 정기적으로 가고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 책에서는 미술관과 음악당이라고 주장한다. 둘 다 일리가 있는데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쇼핑몰이 더 설득력있다. 미술관이나 음악당보다 정기적으로 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노출과 관음증이 순화되고 부드러워지고 무엇보다 문명화된 형태로 나타나는 무대가 바로 거리다. 그러나 극장에서 배우가 공연을 하고 이를 관객이 관람하는 형태와는 사뭇 다르다. 즉 모두가 배우이고 관객이며 서로 간에 노출과 관찰이 일어나는 소통의 공간이 거리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시선의 전투가 벌어지는 것이다. 승자도 패자도 사상자도 없는 전투가 벌어지고 시선의 그물망이 촘촘하게 짜이는 것이다. [268p]

이 책의 좀 더 작은 주제는 거리(가로)에 대한 주장이다. 도시의 거리가 실핏줄이라는 식의 식상한 비유는 전혀 없지만, 여하간 거리에 사람이 걸어다니도록 해야만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거리는 도시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인프라이다. 그 거리를 가꾸고 즐기는 것이 도시의 첫번째 과제이다. [269p]

끝으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비판을 많이 받았던 두 건축물(광화문 트윈트리타워, 동대문 DDP)에 대해 대단히 호의적으로 썼다는거다. 이 두 호의적인 평가가 책의 시작과 끝에 배치되어 있다. 어쩌면, 이 책은 두 건축물을 칭찬하기 위한 논리전개로 다른 건축물의 비판으로 가운데를 채운 듯한 느낌마저 든다.

책의 첫 시작에서 트윈트리타워를 칭찬하면서 나는 “응? 내가 생각했던 ‘한국의 건축비판’ 내용은 아닌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칭찬했던 논리로 다른 건축물을 비판한 후, 마지막 장에는 그 모든 비판을 모아서 ‘DDP가 왜 칭찬받아야 하는 도시건축물인가’의 논리로 사용한다. 뭐랄까, 이 책의 모든 비판은 DDP를 칭찬하기 위한 거름이라는 기분마저 들었다. 흥미로운 전개다.

이 두 건축물을 칭찬한 이유는 마냥 객관적인 느낌이 들진 않았다. 그래서, 이런 칭찬은 건축가 개인의 주관도 있겠지만 스스로가 이 건축물이 존재하게 되는 과정에 개입했거나 칭찬해야 하는 친분이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뭐 아님 말고.

DDP는 아직 안가봤는데, 이 책을 읽고 이해가 깊어졌으니 언젠가 가보면 더 구석구석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겠다.

어느 날 400억 원의 빚을 진 남자

어느 날 400억 원의 빚을 진 남자

어느 날 400억 원의 빚을 진 남자

유자와 쓰요시 저 / 정세영

장밋빛 인생의 한 남자,
갑자기 400억 원의 빚을 지다

이 소설 같은 이야기는 대기업에 다니며 장밋빛 인생을 누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부도 직전의 회사와 400억 원의 빚을 떠안게 된 한 남자의 기록이다.

그는 ‘빚을 다 갚으려면 80년은 걸릴 것’이라는 은행의 선고를 받았지만 다시 회사를 일으키기 위해 16년간 분투한다. 지하철에 투신할 뻔한 사건, 회생의 조짐이 보이던 무렵 터진 광우병 사태, 노로바이러스 발생으로 신문에 보도된 사건, 신뢰하던 직원의 죽음, …

 

무척 자극적인 제목의 책을 아웃스탠딩이 소개해서 읽어봤다. 책은 두께에 비해 무척 빨리 읽혀서 하루가 되기 전에 다 읽을 수 있다. 문장 자체가 끝없이 다음 문장을 읽도록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책에서 도움이 되는 내용은 절반 이후에 몰려 있다. 그 전에는 좌절과 답답했던 상황에 대한 서술의 연속이다.

책의 내용은, 내가 15년 전 즈음 읽었던 서두칠 CEO의 “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와 거의 미러링에 가까운 책이다. 두 책 모두 어느날 빚 밖에 없는 회사의 CEO가 되었는데 죽을 힘을 다해서 턴어라운드를 이뤄냈다는게 골자인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참으로 비슷했다. 물론, 둘 다 대단한 살아있는 역사다.

나는 한 때 이런 책을 무척 즐겁게 읽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쓴, 턴어라운드를 만든 내용들 말이다. 그 중에서는 요즘 무한히 나쁜 평을 듣는 BBQ 사장의 책도 있었다. 한 때는 나도 이처럼 턴어라운드를 일구는 회사의 Executive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작은 회사에서 매달 나가는 임대료만으로도 무척 스트레스 받는다는 것을 체감한 이후로는 그런 일은 (평생)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이러다가는 언제까지고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바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처리함과 동시에 정말로 필요한 대처법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긴급 상황을 처리하는 ‘당면책’과 문제 발생 원인에 메스를 가하는 ‘근본책’을 병행하기로 결심했다. (…) 장소를 바꾸니 생각도 강제로 전환되어 꽤 효율적이었다. [117-118p]

장소에 따라 두 가지 생각을 바꿔갔다고 했다. 즉, 장소가 생각을 전환시키도록 했다는거다. 이런 일처리 방식은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른데, 나도 이제는 제 때 퇴근하고 집에서는 집필을 비롯한 다른 일을 하도록 강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아침에 카페로 출근했을 때 꽤 효율이 좋았다. 나는 너무나 산만한 사람이기에 좀 더 강제적인 규칙이 필요하다.

경험에서 오는 선입견 가운데 하나인데, 음식점 직원들은 고객이 예약 방법을 자세히 알고 있다고 단정 짓는다. 직원들은 아무래도 단골손님과 대화하는 일이 많다 보니 고객이 자신의 가게에 관해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다. [139p]

서비스를 만드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앱 기획 회의를 하면 늘 세 가지 관점에서 충돌이 난다. 매니악 하게 쓰는 사람, 평범하게 쓰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기 때문에 세가지 관점을 모두 들으며 만들어야 하는데 이 가운에 밸런스 잘 잡는 기획이 성공한 것이렸다.

빈번한 이벤트 기획도 대처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141p]

저자는 로컬 음식점을 운영한다. 온라인 서비스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발현할까 고민스러울 때가 있다. 왜냐하면 이벤트도 많이 알려져야 하는데 그 방법이 참으로 모호하거나 힘없을 때가 많다.

창업자는 회사를 자기 자식처럼 키워왔기 때문에 아무래도 감정이 실리고 판단력이 흐려진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답은 명확한데도 ‘창업 1호점은 없앨 수 없다.’라든가 ‘이 직원은 이동시킬 수 없다.’와 같은 판단을 하게 된다. 반면 내 경우는 ‘자금난을 완벽히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이끌어낸 결론이었다. [150p]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배운 구절이 바로 위의 구절이다. 나 역시 서비스 개발에 과도한 애정을 쏟아서 감정적인 판단을 할 때가 많다. 고백하건데, 감정 덩어리의 판단만 한다. 그런 ‘지키는 마음’이 좀 더 장인에 가깝다고 생각해서(그래, 장인 코스프레다) 그랬던 것도 있다. 어려운 시기에도 지킬 것은 지키고자 하는 일본 문화에서 이토록 냉정했다는건 놀랍다.

불만을 서로에게 쏟아내는 관계가 되어 있었다. (…) 하지만 성과를 내기 시작하자, 문제는 싱거울 정도로 간단하게 해소되었다. [157p]

조직 내에 불화가 있는가? 해결법은 단순하다. 장사가 잘되면 된다.

나는 우선 무언가를 인정해줌으로써 상대의 ‘마음의 컵’이 위로 향하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그렇게 하면 전하고 싶은 말이 순조롭게 컵 안으로 들어갔다. [159p]

위의 문장은 참 재미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의 컵을 위로 돌린 후에야 뭐든 말해야 한다. 물론 베스트는 항상 위를 향하고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거다.

내 말을 가장 잘 듣는 사람은 나 자신 [191p]

위의 문장은 부정적인 말을 고치고 늘 긍정적인 말을 하도록 했다는 의미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부정적인 문장을 쓸 때 늘 ‘말한 대로 이루어지니 긍정적인 말만 해야 한다’고 하셨다. 물론 어머니 말이니까 잔소리로 흘려 들었지만 위의 문장으로 보니 설득력있다.

“사장님은 결코 변하지 않을 거에요. 그래서 앞으로도  똑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 “아직 감사하다는 마음이 있을 때 그만두게 해주세요.” 그렇게 H는 떠나갔다. 더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 이상 회사에 있으면 나를 원망하게 되리라는 의미였다. [208-209p]

위 문장은 참 슬픈 말이다. 나는 사람이 안변한다는 말을 아직도 부정한다. 나는 사람은 아주 쉽게 변한다고 아직도 믿는다. 물론 그렇게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이 있어야 좀 더 기대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대해 단정짓기도 싫고, 나는 늘 사람의 가능성에 투자하고 싶다.

정신적인 풍요란 일을 통해 성장하면서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는 보람을 느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점에서는 중소기업이 월등히 유리하다. (…)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되지 못한 회사’가 아니다. 나는 사회의 한 모퉁이를 밝히는 것이 중소기업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분야로 특화해간다’고 바꿔 말해도 좋다. 작은 시작에서 특정 분야로 특화한 기업은 강하다. [213-215p]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비교에서 우리나라는 늘 중소기업이 열등하다는 선입견이 있다. 나는 여전히 둘은 다르고 중소기업은 무척 강하다는 것을 보이고 싶다. 반대로, 대부분의 대기업은 애초에 대기업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한다. 내가 지극히 마이너 주의자인 것도 있지만, 내일 죽는다면 대기업에 다니는 것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게 더 재미있는 삶일거다.

지역 손님에게 압도적인 상품 가치를 제공한다. [220p]

위의 문장이 내가 서비스를 만드는 모든 목표를 함축하고 있다. 압도적인 상품가치. 결국은 그것이다.

상황에 조종당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주체적으로 사는 것, 그것이 길을 개척한다. [241p]

내가 대부분 선택하는 삶 보다는 부르는대로 가는 삶을 살긴 했다. 실제로 부르는 곳이 다 좋은 곳이었고 후회도 없었다. 이제 직업 생활도 얼마 안남았는데, 선택할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와타나베 이타루 저 / 정문주

아마존 일본 사회·정치, 경제 분야 베스트셀러 1위!

“부패와 순환이 일어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았다”
일본 변방 가쓰야마의 작은 시골빵집 다루마리에서 일어난 소리없는 경제혁명

전세계적으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사회주의보다 우월한 체제로 인식되었던 자본주의가 자본의 불평등과 불공정성의 면모를 급격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세계 지식인들 사이에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 한 변방의 작…

 

요즘은 읽고 싶은 책을 사는 것보다 읽고 싶은 책을 사려다가 눈에 띄어서 같이 산 책이 더 재미있다. 이 책도 논란의 건축 낭만의 건축과 함께 샀던 거다. 원래 사려던 책은 이토록 멋진 마을이다.

우리 집 앞에 맛있는 빵집이 있는데 그래서인가 더 재미있게 읽혔다. 더불어 부부가 같이 운영하는 빵집이라는 점에서 더 몰입감 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효모균을 낡은 집에서 직접 배양(!)해서 빵을 굽는 사람의 이야기다. 꽤 시골에 있는 것 같아서 일본에 가더라도 직접 가볼 기회는 없을 듯 하다. 하지만 정말 맛있겠다는 생각만큼은 확실히 든다.

어쩌면 이 책은 내가 그리던 모습게 아깝지 않을까 한다. 작지만, 먹고 사는데 지장없고, 지역 경제만으로 반자급자족적인 사업을 하고 있고, 사업의 확장 욕구도 별로 없고, 소품종만 만들면서도 그 소품종에 대한 고도화를 꾸준히 한다.

비싸다고 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싸게 산 만큼 그 대가는 우리가 치러야 할 몫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195p]

나는 위의 문장에 동의한다. 수 년전부터 유행하는 ‘착한 가격’이라는게 마음에 안들었다. 저렴한 횟집, 무한횟집 등등 그저 제 값 주고 좋은 것을 먹고 만족하고 싶다.

상품과 노동력의 교환가치를 높게 유지하는 것이다. 기술자는 기술과 감성을 연마하여 노동력의 교환가치를 높게 유지하면 된다. (…) 그렇게 상품 하나하나를 정성껏 만들고 상품의 교환가치를 높게 유지해야 소상인이 소상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상품을 정성껏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상품을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일이다. (…) 그러기 위해서는 누가 어떻게 만들었으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정중하고 공손하게 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이유을 내지 않겠다는 것은 그 누구도 착취하지 않겠다는 의미, 즉 그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195-196p]

사는데 돈이 그리 많이 필요한가에 대한 기준은 상대적이다. 나는 과거엔 월 10만원 정도만 여유자금이 있으면 불편함이 없었고 사고 싶은 것도 다 샀다. 요즘은 월 50만원이면 만족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10만원이었던 내가 50만원을 바라는 것은 욕심인가? 50만원을 생각했다가 100만원이 되면 욕심인가? 어느 선이 적당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차별화하려고 만든 물건에도 크게 의미 있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개성이라는 것은 억지로 만든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상품을 만드는 사람이 진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원래 가진 인간성의 차이가 기술과 감성의 차이, 발상의 차이로 이어질 때 나타나는 것이며, 필연적인 결과로서 드러나는 것이다. [210p]

위 문장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건진 가장 값진 문장이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은 무엇이 다른 것인가? 개성있는 제품이란 무엇인가? 정신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IT 분야의 디자이너와 개발자는 자신이 만드는 것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진정 ‘개성있는 결과’를 만드는가? 오랫동안 생각해 볼 일이다.

생활 속에 일이 있고, 일 속에 생활이 있는 나날이다. 궁목수인 오가와 미쓰오 씨가 “장인은 월급쟁이가 아니니 생활이 삶이고 삶이 직업이다.”라고 한 것처럼 우리도 삶 그 자체가 직업이다. [223p]

위 문장은 너무 나를 뜨겁게 만드는 멋진 문장이지만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말이다. 사실 이해는 했는데 이를 동료와 이 분야에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동료들과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 하지만 강요할 수는 없고 주장할 수도 없다. 솔선수범을 보인다고 스며들거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빵에 대해 더 파고들고 기술력을 높이는 것도 좋지만, 빵만 보이고 세상이 안보이게 되면 어던 빵을 만들어 제공해야 할지를 모르게 된다. [224p]

기술자도 마찬가지다. 나도 조금 골방개발자스러운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점에 대한 여유로운 고찰이 필요하다.

돈을 미래를 선택하는 투표권. 돈을 쓰는 방식이야말로 사회를 만든다. [232p]

위 문장은 참 멋진 말이다. 올바른 제품, 정직한 제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사용해야 사회가 건강해지지, 베끼거나 기만해서 많이 팔리는 제품이 잘되면 안된다. 근래 오뚜기가 소비자들에게 좋은 호응을 받고 있는데 사회가 건강해진다는 신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책의 뒤에 집중되어있다. 그러니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읽으면 얻을게 참 많은 책이다.

논란의 건축 낭만의 건축

논란의 건축 낭만의 건축

논란의 건축 낭만의 건축

정대인

“에펠탑은 곧 붕괴되어 파리를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다!”
1889년, 소문과 논란의 건축물이었던 에펠탑은 어떻게 인류의 영원한 동경을 받는 낭만의 건축물이 되었는가?
랜드마크 증후군에 걸린 이 시대를 사유하는 에펠탑 인문학적 해부도

에펠탑은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파리 만국박람회 자리에서 국력을 과시하고 이익을 취하고자 철저히 사업적으로 계획된 건축물이었다. 건설 당시에는 온갖 루머와 비난에 몸살을 앓았고, 완공 후에도 언제든 철거될 수 있는 시한부 목숨이었다. 식민지 건설로 벌어들인…

 

손에 잡으면 놓기 싫을 정도로 재미있는 책이 있다. 내일 죽는다면 이 책을 다 못읽은걸 후회할 것 같아서 골아떨어질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는 책이 있다.

동네 서점에 가서 다른 책을 찾다가 우연히 집어든 책이다. 원래 사려던 책은 결국 못찾았지만,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 책은, 에펠탑에 대한 책이다. 그게 다다. 에펠탑의 역사부터 오늘날 아이콘이 된 이유까지 건축학자가 역사학, 미학, 건축학 등 그야말로 다채로운 관점으로 바라본 책이다.

“에펠탑이 전 세계에서 복제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유명세가 아닐까요? 하지만 복사품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더더욱 원조 에펠탑을 방문하고 싶어합니다. 에펠탑은 끊임없이 모방되고 복제되고 재창조되지만 그 무엇도 에펠탑에 필적할 수 없죠. 왜냐하면 우리의 에펠탑에는 그 어떠한 복제품에도 찾을 수 없는 특별한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바로 에펠탑이 파리에 있다는 점이죠.” [11p]

정신을 차리고 나니 과연 무엇 때문에 인류는 100년이 훌쩍 니자도록 이 철골 덩어리에 그토록 큰 애정을 쏟아부은 것일까라는 의문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160p]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무언가 세대를 거쳐서 쓰이는 것을 만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거다. 건축에 대한 나의 경외심은 그 아쉬움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나는 건축가가 쓴 글에 대해서는 좋게 생각하는 편견도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도 글을 멋있게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인문학적인 관점에서도 보다 사랑받고 철학을 나누는 직업이 될거라 생각한다.

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

읽는데 오래 걸린 ‘착한 수학’ 독서를 마친 후 집어든 책. 이 책은 김헌기 님의 일기에서 보고 메모해뒀다가 산 책이었다.

책은 독특한 구성으로, 250페이지에 가깝지만 사실은 120페이지 정도의 얇은 책이다. 왜냐하면 모든 페이지가 좌측은 텍스트, 우측 전체는 삽화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이지가 매우 빨리 넘어간다. 읽는데 출퇴근 4번이면 다 읽는다.

이미 훌륭한 책이라는 평이 많은지라 내가 이 책에 대해서 어떻다고 말할 여지는 없겠다만, 아쉬운 점은 번역이 그리 매끄럽지 않다는거다. 그래서 전하려는 말보다 문장 그 자체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서점에서 훑어볼 때는 몇몇 페이지가 내 눈에 쏙 들어왔는데 전체를 읽을 땐 그리 단단한 구성은 아니었다. 저자는 이 책이 원래 발표 슬라이드를 정리해서 몇 일만에 에세이 형식으로 후다닥 써낸 것이 우연찮게 유명해진거라고 했다. 겸손한 표현이겠지만 실제로 그런 대강의 속도감이 느껴지기도 하다.

크리스 크로퍼드에 따르면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서로의 목표를 저지하면서 발생하는 갈등에 한정된 엔터테인먼트의 한 종류다. 시드 마이어는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라는 유명한 정의를 내린 바 있다. 앤드루 롤링스와 어니스트 애덤스는 ‘가상 환경에서 하나 또는 그 이상으로 가볍게 연결된 도전의 연속’이라고 하였다. ‘케이트 살렌과 에릭 짐머만은 <놀이의 규칙>에서 ‘플레이어들이 규칙이 정해진 인공적인 갈등에 참여하여 측정 가능한 결과물을 내는 시스템’이라고 하였다. [34p]

위는 게임의 정의에 대한 레퍼런스들이다.

…뇌가 새로운 경험을 갈망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뇌는 보통 새로운 데이터를 갈망한다. 새로운 데이터만이 패턴을 갱신하는 데 필요한 전부다. [62p]

플레이어의 표정으로 나타나는 감정을 네 가지, 즉 어려운 재미, 쉬운 재미, 상태 변화, 사람 요소로 분류했다.(역주: 상태 변화는 게임에 성공하고 실력이 늘 때 느끼는 재미, 사람 요소는 다른 사람과 함께 게임을 하며 느끼는 재미를 가리킨다) [110p]

샤덴프로이데(고소함), 피에로(우쭐함), 나체스(흐믓함), 크벨(뿌듯함), 사회적 행동 [112p]

창작자의 소명은 이런 사람들에게 변화에 적응할 도구를 제공하여 세상이 바뀌고, 문화적 변화의 조류가 휘몰아칠 때 안락 의자에서 나와 인류가 계속 진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218p]

나는 우리 서비스에 게임성을 조금씩 넣으려고 하고 있고 이 책에서 얻은 몇가지는 좋은 영감을 주었다.

착한 수학

지앤선 출판사 김지영 편집장 님의 소개로 알게 된 책. 이 책의 제목은 훼이크고, 진정한 제목은 소제목인 ‘A geek’s guide to the beauty of numbers, logic, and computation’이다. 즉, 수학에 관심이 없다면 접근하기 어려운 책이다.

다행인 점은 저자도 나와 같은 프로그래머라는거고 내가 수학 관련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이해하는게 어렵지는 않았고 공감대도 꽤 있었다.

하지만 나 같은 정도의 교집합이 없다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꽤 노력이 필요할거다. 그럼에도 책의 목적은 일관되게 ‘어려운 지식을 가벼운 어조로 설명하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가 블로그에 써왔던 글을 모아서 정리한 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제가 어렵기 때문에 책의 70%는 쉽게 종이가 넘어가지 않는다.

놀라운 점은, 이 책의 번역은 깜짝 놀랄 정도로 훌륭하다는거다. 전문적인 내용을 오류없이 번역하고 있고 문체도 매끄럽다.

이 책은 알면 좋은 내용(예: 튜링머신 등)은 재미있게 설명했고 어려운 내용은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수학에 그 자체에 대한 훌륭한 교양서다.

나눗셈은 양에 기초한 개념이다. 그러므로 ‘X를 Y로 나누면 얼마인가?’하는 질문은 ‘Y개를 취할 때 총합이 X가 되는 적당한 양이 얼마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39p]

위는 불능에 대한 좋은 설명이다.

논리는 기계적인 추론을 위한 시스템이다. 논리는 중립적인 기호 형태로 주장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고, 이 기호 형태를 가지고 주장이 유효한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이다. 논리에서 중요한 것은 의미가 아니다. 대신 주장을 구성하는 추론의 과정이 얼마나 잘 연결되는지가 중요하다. [93p]

논리에 대한 좋은 정리.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실연당할 때 한 번쯤은 낚여서 산다는 ‘사랑의 기술‘의 저자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책이다. 물론 난 이번에는 안낚였다.

이 책을 구매했던 이유는, 심리학 서적 하나 읽을 생각에 서점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책의 크기가 딱 좋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문고판 사이즈에 가까울 정도로 작고 얇은 크기다.

전체적으로 번역 품질은 껄끄럽다. 앞 부분은 여러번을 반복해서 읽었고 뒤에는 수월하게 읽혔는데, 그 이유는 번역 때문도 있지만 글의 논조 때문도 있다. 앞부분은 자신의 심리학적 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 여러 주변 상황을 설명하고 비판하는데에 많은 양을 할애하고 있다. 정작 주제가 희미해져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호한 편이다.

그러다가 중반에 그 모든 해결은 ‘사랑’이라고 정의하면서 빠른 호흡으로 글이 나아가고, 그 후에 ‘억압’이나 ‘자아찾기’ 같은 원래 말하고자 했던 키워드가 나오면서 (아주) 빠르게 글이 나아간다.

많은 정신의학자들은 – 정신분석학자들 역시- 결코 너무 슬프거나 너무 분노하거나 너무 흥분하지 않는 ‘정상적’ 인격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들은 ‘유아적’ 혹은 ‘신경증’과 같은 단어를 이용해 ‘정상’인의 전통적 모델에 맞지 않는 인성 유형이나 특징들을 비난하였다. [93p]

위 문장에 동의하는게, 우리나라의 경우 어린 시절에는 ADHD를 과잉 진단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강박증을 과잉진단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이해가는게 자살률 1위의 나라에서는 걱정이 앞서긴 한다.

어떤 아이에게 매일 학교 가는 게 좋으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물론이죠!”라고 대답한다면 의심스럽다. 물론 학교에 가고 싶을 때도 많겠지만 놀거나 다른 짓을 하고 싶을 대도 있을 것이다. 아이가 ‘나는 매일 학교에 가고 싶다’고 느낀다면 그 아이가 규칙적인 등교에 대산 자신의 거부감을 억압했을 가능성이 있다. [133p]

‘에이 뭐 이런걸 갖고. 작가가 순진하지 않은건가’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이 책에서 말하는 바는 ‘자아란 무엇인가’다.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게 정말 행복한건지 행복을 사회적으로/상황적으로 강요당한건지에 대해서 묻는다. 그에 대한 비유로 ‘레코드판 플레이어가 저는 바이올린을 연주합니다 라고 말한다면, 레코드판 플레이어 외에 모두는 그 플레이어는 그저 바이올린이 저장된 레코드판을 돌릴 뿐이라는 것을 안다’라고 말하는 것에서 정신이 확 들었다.

모든 종류의 모욕과 비하에도 이런 무능력이 나타난다. 이 경우에도 행동은 모욕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무능력과 타인이 옳고 자신은 모욕당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 자발적 감수 사이를 오간다. (…)때로는 상대에게 때로는 자신에게로 향하는 분노에 사로잡힌다. [154p]

위의 문장은 사실 내 얘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를 화나게 하는 말들을 들으면 그냥 웃어넘기지만 뒤늦게 분노할 때가 많다. 나의 정신건강에 늘 좋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사실대로 본다는 것은 그를 투영 없이, 왜곡 없이 객관적으로 본다는 뜻이며, 이는 투영과 왜곡을 낳는 자기 내부의 신경증적 ‘악덕’을 극복한다는 의미이다. (…) 그런 내면의 성숙에 도달한 사람만이, 자신의 투영과 왜곡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사람만이 창조적으로 살 것이다. [190-191p]

에리히 프롬은 자아의 인식에서 출발해서 자아를 순수하게 보는 것에 성공하면 타인도 온전하게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끝으로 그 수준이 되면 자아를 찾고 보다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인간으로 성장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고 있다.

진짜 삶의 첫번째 조건은 감탄의 능력이다. (…) 두번째 조건은 집중력이다. (…) 또 한가지 조건은 회피하지 않고 양극성에서 나오는 갈등과 긴장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193-198p]

이 책의 결론은 위의 세가지다. 즉,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조건이다. 이렇게 써놓으니 이 책의 논거는 그리 단단하지 않고 희미하다는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책 중간중간 말줄임표(…)가 있던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실제로 원서를 축약한건지 원본이 그런건지 설명을 찾지 못했다. 다만 여러 개의 에리히 프롬의 미발표작을 엮어서 낸 것이라고 하는데 이곳저곳에서 따온 글을 엮으면서 논거가 건너뛴 구간을 표시한게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도 번역서의 입장에서 이런 편집은 그리 호감이 가지 않는다. 독자가 꼭 그 말줄임표를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번역자는 독자를 이끄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말줄임표 편집은 독자에게 물음표만 던지고 답을 안한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