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이 책은 그동안 내가 읽었던 번역 관련 책 중에서 가장 핵심만 요약한 다이제스트판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시 말해, 내가 번역에 대한 세미나를 한다면 이 책으로 골격을 잡은 후 여러 예시를 들 수 있겠다.

그동안 읽은 번역 책들의 거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얇고 가볍다. 얇은 이유는 예시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전에 자세한 책을 읽었던지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너무 간단히 아는 상태에서 다른 책은 지루해했을테니까 말이다.

캐주얼한 번역에 대한 책은 이로써 거의 다 읽었고, 이 다음은 보다 전문적인 내용을 읽을 차례다. 예를 들어, ISO 표준에 대한 것이나 번역학에 대한 전문서적들이다. 원래 없던 목표인데, 기술번역에 대한 세미나를 한 번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올해 말에 한 권 정도는 더 번역을 해도 좋은 경험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번역은 외국어 실력에서 시작하여 한국어 실력에서 완성된다. [10p]

위의 문장은 서론에 나온 말이다. 둘 다 어설퍼서 내가 번역을 할 깜냥이 되는지 걱정이 된다. 더 많은 책을 읽으며 공부해야겠다.

위기 관려 능력이란 미련 관리 능력이나 욕심 관리 능력인 셈이다. [20p]

주제를 잘 선택하자는 말이다. 원본을 잘 잡아야 번역도 잘된다. 원본에 ‘삘’이 꽂히지 않으면 안하는게 낫겠다.

말이 원뜻과 다르게 변질되어 쓰이도록 만든 사회풍토와 제도를 나무라야지 애먼 용어를 탓하면 안 된다. 비판하고 제안하자 그러면 후손들은 더 좋은 표현을 보고 배운다. [74p]

번역자는 늘 보편적인 표현을 궁리해야 한다. 그래야 번역문이 더 오래 사랑받을 수 있다. [81p]

위의 문장은, 아마도 이 책에서 건진 가장 값진 문장이다. 시간을 빠르게 훑는 기술번역이라도 후손들이 더 좋은 표현을 보고 배울거라는 사명감을 가져야겠다.

항공기 조종 견습생에게 계기판은 혼잡하고 두려운 대상이지만 능숙한 조종사에게 계기판은 복잡할 뿐 혼잡하지 않다. 필요한 지식을 습득했기 때문이다. 모르면 혼잡하고 두렵지만 알면 복잡하더라도 두렵지 않다. [98p]

위 문장은, UX 관점에서는 좋지 않은 표현일 수 있지만 사실은 사실일게다. 내가 만드는 수 많은 툴도 사실 뭐…나만 편한 경우가 많다. 나 혼자 숙련자이기 때문이다.

“번역은 사랑과 비슷하다. 무엇이 사랑인지 아는 건 어렵다. 그러나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 아는 건 어렵지 않다.” (translation is like love; I do not know what it is, but I think I know what is not) [141p]

피터 뉴마크(Peter Newmark)라는 사람의 ‘번역 교과서’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우주는 ‘집 우, 집 주’처럼 동의어를 나열한 게 아니라 각기 공간과 시간을 가리키는 동격인 상대어 모음이다. (…) 문장 성분 사이의 격이 자연스럽게 맞추어진 글은 대개 믿을 만하다. [163p]

내가 이 책을 본 후 실제 번역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문장이다. 이 문장을 본 이후로 우리말:우리말, 한자어:한자어 처럼 격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랬기에 활발한 비판도 일어난 것이다. 전에 쓰인 적 없는 한국어 표현을 처음 만드는 건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어려운 일이다. 좁은 문으로 가겠다고 다짐한 번역자는 그 짐을 기꺼이 떠안는다. 성심껏 한국어로 옮긴 번역자의 모자란 지식은 동료 번역자나 꼼꼼한 독자가 채워 주면 된다. 그렇지만 외국어를 그대로 두거나 엉뚱한 외국어로 바꿔치기하면 욕을 먹어도 싸다. [175p]

이 책의 저자가 자주 쓰는 표현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거다. 번역을 일이나 직업이 아닌 도를 닦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번역문을 첨삭하면서 관형격 조서 ‘~의’가 제대로 쓰였는지 유심히 본다. 외국어 투 문장을 양산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182p]

일본어 투 표현인 ‘~에 있어서’는 한국어 문장에 어울리지 않는다. [188p]

주어를 강조하려면 대개 조사 ‘이/가’를 붙이고 술어의 내용을 강조하려면 ‘은/는’을 붙인다. [189p]

나는 ‘~의’ 사용을 의식적으로 자제하는 편이므로 다행이지만, 나의 단점은 ‘~에’로 잘 못 쓸 때가 종종 있다.

번역자는 원문을 수없이 읽어 본 사람이므로 독자에겐 훌륭한 선생이거나 안내자다. (…) 좋은 번역자는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글을 쓰며, 가벼운 표현에 무거운 메시지를 담는다. (…) 번역자는 독자에게 3~4백쪽 본문 내용을 서른 줄로도 설명할 수 있고, 서너 줄로도 요약해 줄 수 있어야 한다. [251-252p]

번역자의 역할에 대해 마음에 드는 표현이다.

건축가 정기용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건축가로서 내 관심은 원래 거기 있던 사람들의 요구를 공간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그는 훌륭한 번역자였다. [262p]

번역자란, 넓은 의미로는 글에서 글로 옮기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직업에서 하나의 의미를 다른 의미로 은유하여 옮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상적인 표현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좁은 의미든 넓은 의미든 어떤 번역자로 남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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