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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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건축

이경훈

어떤 건축이 좋은 건축일까?
시민의 행복을 가로막는 서울의 대표 건축과 도시 건축의 조건에 대하여

어떤 건축이 좋은 건축일까? 우리는 살면서 늘 어떤 건물에 대해 말한다. 차창 밖의 빌딩이나 동네의 신축 건물, 언론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건물들에 대해 한마디씩 평한다. 가령 광화문 광장, 서울 시청이 생겼을 때도 그랬고 최근 DDP를 둘러싼 논란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기준으로 건축을 평하는 것일까? 단지 외향이 멋있거나 노출 콘크리트와 하이테크 기법으로 만들면 좋은 건축일까? 많은 사람들과 전문…

 

건축 관련 책만 10권 정도 읽었다.

건축 주제의 책이 프로그래머인 나에게 주는 감흥이라면, (1) 나 혼자 잘만든다는게 아닌 주변과의 관계를 고려하게 한다거나 (2)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지 좀 더 긴 호흡으로 생각하게 한다거나 (3) 현대의 기술이 미래에는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 등등 무언가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경험하는걸 만든다는 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다.

무엇보다도, 건축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재미라면 이제는 건물을 볼 때 간판이 감춰놓았던 건물의 온전한 모양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거다. 실로 다양한 모양들을 관찰할 수 있게 된 나는 거리를 걸을 때 볼게 많아져서 좋다.

이 책은, 이 전에 읽은 책 빨간 도시와 합본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동질감이 있다. 빨간 도시가 총론이라면, 이 책은 각론이랄까. 우리나라의 배려 없는 건축물들이 도시와 문화를 망치고 있다는 주제 하에 두 책은 각자의 논리를 펼친다.

빨간 도시가 좀 더 철학적인 접근을 하면서 예시를 든다면, 이 책은 “떠든 놈 너! 너! 나와”라고 하듯 건물 몇 개를 콕 찝어서 샅샅이 분석한다.

세상의 모든 형태는 세 가지 유형에서 기원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자연의 유형이다. (…) 둘째는 시계, 자동차 같은 기계적 원리가 표출되어 만들어내는 인공적, 기계적 형태다. (…) 그러나 이 두 가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세 번째 형태 요소가 있는데, 바로 도시다. 도시는 분명 사람이 만들었지만 사람의 의지대로 통제할 수 만은 없는 유기성과 생명을 가지고 있다. [72-73p]

이 책은 건축물 하나하나를 비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공동체를 살찌우는 도시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반례 모음집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쇼핑몰’이라는 말이 대형 매장보다는 전자상거래를 통칭하는 용어로 먼저 익숙해진 것이 흥미롭다 [151p]

아하! 그렇구나. 우리나라는 땅이 좁아서, 인터넷이 너무 빨리 좋게 깔려서 그런가보다.

전원도시가 저밀고층이라면, 고밀저층의 건축이 도시적 해법이다. [214p]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건물은 가급적 인도에 가깝게 열지어 있어야 한다는거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치안의 역할도 하고 조명의 역할도 하고 소상공인의 터전이 되기도 하고 걷고싶은 거리가 되도록 한다는거다.

땅콩집은 개량 한복이다.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개성 있는 삶의 공간을 누려보겠다는 의지를 건축적으로 구현한 사례이며, 전통적인 주거 공간을 우리 시대에 맞게 해석하려는 노력이다. 물론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225p]

땅콩집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저자는 땅콩집이 아파트의 대안이지만 이 역시 울타리를 쳤다는 점에서 공동체를 살찌우게 하지는 않는다고 비판한다.

혹자는 신이 죽은 현대사회에서 예술이 종교를 대신한다고 한다. 그럴 지도 모른다. 미술관과 음악당은 교회를 대체했다. 공연이 예배를 대체하고, 시민들은 문화 예술 시설에서 모이고 만나며 교류하고 헌금을 낸다. 유럽의 옛 귀족들이 교회에 기부했듯, 현대의 부자들은 오페라하우스 벽면에 자기 이름을 새기기 위해 기부를 했다. [248p]

예전에 읽은 책에서는 도시의 쇼핑몰이 중세시대 교회의 역할을 한다고 했다. 주말마다 정기적으로 가고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 책에서는 미술관과 음악당이라고 주장한다. 둘 다 일리가 있는데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쇼핑몰이 더 설득력있다. 미술관이나 음악당보다 정기적으로 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노출과 관음증이 순화되고 부드러워지고 무엇보다 문명화된 형태로 나타나는 무대가 바로 거리다. 그러나 극장에서 배우가 공연을 하고 이를 관객이 관람하는 형태와는 사뭇 다르다. 즉 모두가 배우이고 관객이며 서로 간에 노출과 관찰이 일어나는 소통의 공간이 거리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시선의 전투가 벌어지는 것이다. 승자도 패자도 사상자도 없는 전투가 벌어지고 시선의 그물망이 촘촘하게 짜이는 것이다. [268p]

이 책의 좀 더 작은 주제는 거리(가로)에 대한 주장이다. 도시의 거리가 실핏줄이라는 식의 식상한 비유는 전혀 없지만, 여하간 거리에 사람이 걸어다니도록 해야만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거리는 도시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인프라이다. 그 거리를 가꾸고 즐기는 것이 도시의 첫번째 과제이다. [269p]

끝으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비판을 많이 받았던 두 건축물(광화문 트윈트리타워, 동대문 DDP)에 대해 대단히 호의적으로 썼다는거다. 이 두 호의적인 평가가 책의 시작과 끝에 배치되어 있다. 어쩌면, 이 책은 두 건축물을 칭찬하기 위한 논리전개로 다른 건축물의 비판으로 가운데를 채운 듯한 느낌마저 든다.

책의 첫 시작에서 트윈트리타워를 칭찬하면서 나는 “응? 내가 생각했던 ‘한국의 건축비판’ 내용은 아닌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칭찬했던 논리로 다른 건축물을 비판한 후, 마지막 장에는 그 모든 비판을 모아서 ‘DDP가 왜 칭찬받아야 하는 도시건축물인가’의 논리로 사용한다. 뭐랄까, 이 책의 모든 비판은 DDP를 칭찬하기 위한 거름이라는 기분마저 들었다. 흥미로운 전개다.

이 두 건축물을 칭찬한 이유는 마냥 객관적인 느낌이 들진 않았다. 그래서, 이런 칭찬은 건축가 개인의 주관도 있겠지만 스스로가 이 건축물이 존재하게 되는 과정에 개입했거나 칭찬해야 하는 친분이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뭐 아님 말고.

DDP는 아직 안가봤는데, 이 책을 읽고 이해가 깊어졌으니 언젠가 가보면 더 구석구석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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