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자본론

2017년 새해 첫 독서. 책은 얇고 작아서 빠르게 읽힌다.
문득 어디선가 추천사를 읽었고 독서 목록에 기록해뒀다가 서점에 갔을 때 눈에 띄는 위치에 있어서 집어들었다.

성공을 거둔 작가가 다소 투박하지만 직접 타이핑쳐서 쓴 듯한 문장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만든 CCC, 츠타야 서점, T포인트 모두 가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다만 이 기획자(책에서는 디자이너와 기획자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가 바라보는 몇가지 지향점은 나에게 좋은 영감을 주고 나 역시도 기존부터 주장해왔던 것을 재확인한다는 점에서 좋았다.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상품은 용도만 충족하면 되었다. (…) 세컨드 스테이지는 인프라가 정비되고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다. 플랫폼에서 상품을 선택하고 그 플랫폼마저도 넘쳐난다. (…) 서드 스테이지는 제안 능력이 있어야 하는 시대다. 제안을 가시화하는 능력이 없다면, 또 디자이너가 되지 못하면 고객 가치를 높이기는 어렵다. [50p]

위의 문장에서 지금은 세컨드 스테이지 같다. 서드 스테이지를 위해서 개발자들은 추천 엔진(suggestion algorithm) 같은걸 연구하는데 그 이상이어야 한다고 본다. 보통 이런저런 ‘제안하는 로직’만으로 인공지능/머신러닝을 말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부러 그 분야의 아웃사이더를 담당자로 앉히는 경우가 많다. 이노베이션은 언제나 아웃사이더가 일으킨다. [71p]

우리 회사는 교육에 아무 관심없어 하거나 천대시(?)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은 보통의 의견에 반대 의견을 자주 내는데, 나는 그런 의견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브랜드 파워는 대차대조표에 기재되지 않는다. (…) 지적자본을 고객가치로 전환시키지 못하면 (…) 보물을 손에 움켜쥐고 썩히는 꼴이다. [131p]

올해 내가 회사에서 가장 주력할 분야다. 이 책은 금융자본의 시대에서 지적자본의 시대로의 이행을 꾸준히 설파하고 있다. 나 역시 동의한다.

효율과 행복은 다르다. 효율은 확실히 편리하고, 편리는 대부분의 경우 쾌적함을 이끌어 낸다. 단, 쾌적함과 행복은 등가가 아니다. (…) 어쩌면 효율과 행복은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지적자본이 대차대조표에 실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상쾌함과 고양감은 숫자로 측정할 수 없다. [141-142p]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든다. 나는 제품에서 주구장창 상쾌함을 추구해왔고 그것은 분명 효율만 생각하거나 트렌디한 것과는 다른 궤에 있다.

 

 

장사는 전략이다

앱서비스나 음식점 장사나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1. 누군가가 와서
  2. 슬쩍 보거나 몇십분 이용해보고
  3. 나가서 다시는 안오거나 또 온다.

그런 점에서 역사가 오래된 음식점 장사에 대한 노하우가 담긴 책은 많은 영감을 준다. 이 책에서 건진 아이디어 또한 많다.

덧붙여, 과거에 ‘샘앤파커스’라는 출판사에서 나쁜 일들이 있었다는 글을 접했다. 소비자의 1인으로서 악덕기업의 물건에 대해 불매하는 행동을 종종 하지만, 책은 정말 어렵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책은 옥시나 남양 같은 대체품 서너개 가운데서 선택할 수 있는게 아닌 지식 그 자체이며 지식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번역의 탄생

번역을 잘 하고 싶어서 읽은 세번째 책, 추천받아서 읽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힘들게 읽은 책이었다.

모든 내용이 너무 진지하고 훌륭해서 한글자씩 떼어다 읽느라 오래걸렸달까.

이전에 읽은 ‘갈등하는 번역‘은 저자와 함께 공부한다는 느낌을 주는 독특한 구성이 돋보였다면, 이 책은 내일 은퇴하는 노교수가 앞에 처음 앉은 나에게 그동안의 모든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가끔씩 숨을 가쁘게 쉬며 가르치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에 영국인이 한국어로 된 책일 많이 번역했다고 가정해볼까요. … 가령 “He said nothing”이라고 쓰지 않고 “Said nothing”이라고 쓰는 영국 작가가 많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67p]

위의 문장이 재미난 이유는, 내가 실제로 영어를 주어를 생략해서 쓸 때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시 읽을 때 고치곤 하지만 손 가는대로 머리 가는대로 쓸 때는 종종 주어를 빼먹는다.

영어 동사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달랑 한국어 동사 하나로만 번역하지 말고 한국어 부사를 덧붙일 수 있으면 과감히 덧붙여라. [120p]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위에서 언급한 부사의 재발견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번역한 글에서는 순우리말 부사를 등장시키려고 애썼다. 예를 들어, “수 십년간 개발자들은 이벤트에 대해서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벤트소싱이 딱히 쓸모있지 않다고 생각해도 괜찮습니다.” 등이다.

이제 번역 관련 서적은 여기까지 읽고 또 다른 주제의 책을 읽어야겠다. 이 책은 정보가 너무 많아서 내가 직접 번역하면서 체득하기엔 경험이 더 필요하다.

장사의 신

이자카야 운영에 대한 책.

  •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것은 앱서비스와 유사한 결을 가지고 있다.
  • 동네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유저가)
  • 우연히 광고나 관련 글을 페이지를 보고 (=길가에 메뉴판을 보고)
  • 호기심에 문을 열어서 들어가고 (=어떤 앱을 보거나 다운받고)
  • 메뉴판을 보거나 주문해서 몇 점 먹어보고는 (=내비게이션 여기저기를 누르거나 뻘글을 써보고)
  • 걸어나간다. (=앱을 닫는다)
  • 나중에 다시 가거나 (=또 열어보거나)
  • 다시는 안간다. (=지워버린다)

앱서비스에 비해 동네 음식점은 1000년도 넘은 비즈니스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의외로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모든 문장, 모든 장을 읽으면서 ‘우리에게는 어떨까’를 생각할 수 있어서 즐거운 책이었다. 인터넷에 흔히 돌아다니는 UX나 모객 관련 글, 심지어 뭔가 과학적인 Google Analytics를 활용한 글만으로는 피상적으로 느꼈던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보다 알맞은 시선을 가질 수도 있게 되었다.

이 책에서 결국 가지고 있는 키워드는 단 하나다 – ‘대화’. 끊임없이 대화를 하라는거다. 리텐션이라는 고상한 단어 하나 없어도 더 와닿는 대화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또한, 대기업에 대항하는 작은 곳만의 매력도 한 번 더 깊게 생각할 수 있게 한다.

갈등하는 번역

번역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학습을 하고 싶어서 서점에 가서 책을 찾던 도중 접어든 책이다. 두께는 적당히 두툼한 수준으로, 416페이지 정도다. 대상 독자는 번역을 직업이자 전공으로 하고 싶은 사람들로, 어찌보면 내용은 번역학 개론이기도 하다.

저자는 꾸준히 ‘커뮤니케이션 번역’, ‘커뮤니케이터로서의 번역가’라는 표현을 쓰는데, 번역자의 역할을 매우 능동적인 위치로 두고 있다. 저자와 시간차이를 두고 있는 또다른 저자의 위상과도 같다.

이 책에서 가장 도움을 준 장은 ’22장. 독자를 낚는 그물을 짜는 기술: 표층결속성’과 ’26장. 혼돈 속에서 탄생한 질서: 한국어의 기둥 은/는’이다. 22장은 문장을 시각화한 것이 인상깊고, 26장은 구정보/신정보로 나눈 후 그에 따라 단어와 절의 배치를 가르친다.

또한 이 책의 가치는, 무엇이 좋은 번역이고 어떤 글은 왜 안읽히는지에 대해 정량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표를 제시하면서 각 번역문에 대해 비교한 것은 글을 보다 논리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우리가 이런 작업을 대화에서 능숙하게, 어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해낼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의 즉각적인 피드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에서는 그러한 피드백이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글은 혼자 쓰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자기 생각을 늘어놓으면 저절로 글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기나 개인 블로그에 끄저이는 단편적인 감상 같은 것들은 물론 그렇게 써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런 글을 쓰는 것이 ‘글쓰기’에 그다지 도움 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246p]

블로그를 열심히 하면 뭔가 글쓰기가 나아질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돌아보게 하는 글이다.

번역은 언어를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목표 독자를 바꾸는 작업이다. 다시 말해 번역이란 가상 독자를 바꿔 글을 다시 쓰는 작업이다. 이것이 바로 번역이다! [296p]

글에서 거의 유일하게 느낌표를 사용한 문장이다.

화제는 동사를 선택하는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글의 전개 방향을 알려주는 깃발과도 같다. [154p]

이 책에서 배운 내용은 화제어, 구정보/신정보다.

원래 이 책을 읽을 후 ‘번역의 탄생’이라는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너무 많은 내용을 배워서 (마치 한 학기 강의를 들은 것처럼) 한동안 말랑말랑한 내용의 책을 읽어야겠다.

이 책을 읽은 후 문제라면, 기존에 취미로 하던 번역에 대해 한 문장도 쉽게 나가지 못하는거랄까.

 

War of IT

김영욱 부장님의 컬럼을 모아서 낸 책으로, 전쟁의 역사와 IT의 역사/트렌드를 앞뒤로 병치한 독특한 구성의 책이다.

음악은 하나의 앨범을 트랙1부터 끝까지 듣는 것을 권하듯 책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리 컬럼을 모아놨다고 해도 하나의 책으로 엮이는 것은 하나의 온전한 이야기다.

이 책의 묘미는, 각각의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편집의 의도를 읽는 것이다. 첫 장은 살수대첩으로 시작하고 마지막 장은 명량해전으로 끝난다. 책의 시작과 끝을 전쟁사에 획을 그은 우리나라의 두 전투로 열고 닫은 것이 인상 깊다. 아마 지은이(또는 편집자)는 우리의 승전기록+우리의 산업에서의 승리로 열고 닫고 싶었겠지만 아직 우리는 그만큼 승리를 선언하기엔 미흡하다.

글쎄, 어쩌면 게임 ‘리니지’의 저력(?: 음성적인 캐시템 거래가 있다해도 이만큼의 경제생태계를 만들고 아직까지 견고하게 유지하는 게임은 없다)이나 e스포츠의 성지를 예로 들어도 괜찮았을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정작 잡스 본인은 아멜리오의 퇴진에는 동의했지만 정작 자신이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은 거부했다. (…) 기존 이사회의 퇴진을 요구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명의 이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퇴진했다. (…) 일할 수 있는 준비가 끝나자 잡스는 어지럽게 펼쳐져 있던 애플의 제품군을 빠르게 정리해 나갔다. [52p]

유명한 일화인데, 대표 자리를 거부했고 자신을 향한 완벽한 셋업이 될 때에서야 올랐다는 것은 두 수 앞을 내다본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이럴 때 낼름 받는데 말이다.

짐 콜린스의 책 “How the Mighty Fall(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는 소위 잘 나가던 기업이 몰락하는 다섯 단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107p]

1단계: 성공에 도취된 자만
2단계: 원칙없는 확장
3단계: 위험 신호 무시, 긍정적인 데이터를 맹신
4단계: 구원을 위한 몸부림
5단계:시장에서 점점 멀어짐

우리는 지금 어디인지, 원칙없이 확장하지는 않았는지, 위험 신호를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봐야겠다.

IT생태계에서는 어제 내린 눈과 같아서 오늘의 상황은 어제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 [304p]

재미있는 표현이다.

끝으로, 이 책에서 양수열 님의 추천사는 내가 여지껏 읽었던 추천사 중 가장 진중하면서도 친절한 어조로 좋은 울림을 줬다. 언젠가 내가 추천사를 쓸 일이 있을 때 나중에 다시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행복의 디자인

서점에서 디자인 분야의 서가를 지나치다가 읽게 된 책이다.

내용은, 디자인에 대한 사랑노래다. 나는 다양한 디자인에 대한 시각과 역사를 다룰거라 생각했는데, 그래 맞았다. 하지만 완벽하게 정보에 치중한 책이 아닌 감상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랑노래다.

웨지우드는 대량 생산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이 올바르지 못한 경영 철학과 만나면 예술은 물론이고 제조산업의 악순환을 가져온다고 비판했다. [73p]

4차 산업혁명이라는 IT는 어떨까? 우리는 어떤 악순환을 가져올까. 요즘 로봇이니 인공지능이니 말이 많다. 혼란한 시대인 것 같다.

아이가 어른의 기억이라면, 어른은 아마도 아이의 꿈일 것이다. [106p]

인상적인 표현이었다.

모든 중간대상들은 언젠가는 버려진다고 말한다. 디즈니 영화 <토이 스토리>의 우디와 버즈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중간대상들은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창의력이라는 이름으로 이후의 인생을 지속적으로 흔들어 놓을 흔적을 남긴다. 어린 시절을 경험한 모두에게 말이다. [110p]

“너무 과한 친절이 오히려 상상력의 제한을 가져온다고 생각해요. 상상이라는건 생각의 정도를 말하는 거잖아요. (…) 만일 그런 기호들이 처음부터 없었다면 오늘은 날씨가 우중충하다거나 상쾌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표현을 조금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겠죠. [147p]

기술과 지식, 재료라는 세 가지 요소를 필요로 하는 공예는 디자인이라는 문제 해결의 과정을 통해서 이 세 요소의 공유가 가능하게 한다. [270p]

개발도 기술과 지식, 데이터라는 세 가지 요소를 필요로 한다.

“개발에서 실패와 성공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 개발은 통계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바로 사람의 기술과 태도에 대한 것입니다. [270p]

“장인정신은 면면히 이어지는 인간의 기본적 충동이며, 일 자체를 위해 일을 잘 해내려는 욕구” (…)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우리는 모두 장인의 가능성을 지녔다. [27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