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

읽는데 오래 걸린 ‘착한 수학’ 독서를 마친 후 집어든 책. 이 책은 김헌기 님의 일기에서 보고 메모해뒀다가 산 책이었다.

책은 독특한 구성으로, 250페이지에 가깝지만 사실은 120페이지 정도의 얇은 책이다. 왜냐하면 모든 페이지가 좌측은 텍스트, 우측 전체는 삽화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이지가 매우 빨리 넘어간다. 읽는데 출퇴근 4번이면 다 읽는다.

이미 훌륭한 책이라는 평이 많은지라 내가 이 책에 대해서 어떻다고 말할 여지는 없겠다만, 아쉬운 점은 번역이 그리 매끄럽지 않다는거다. 그래서 전하려는 말보다 문장 그 자체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서점에서 훑어볼 때는 몇몇 페이지가 내 눈에 쏙 들어왔는데 전체를 읽을 땐 그리 단단한 구성은 아니었다. 저자는 이 책이 원래 발표 슬라이드를 정리해서 몇 일만에 에세이 형식으로 후다닥 써낸 것이 우연찮게 유명해진거라고 했다. 겸손한 표현이겠지만 실제로 그런 대강의 속도감이 느껴지기도 하다.

크리스 크로퍼드에 따르면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서로의 목표를 저지하면서 발생하는 갈등에 한정된 엔터테인먼트의 한 종류다. 시드 마이어는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라는 유명한 정의를 내린 바 있다. 앤드루 롤링스와 어니스트 애덤스는 ‘가상 환경에서 하나 또는 그 이상으로 가볍게 연결된 도전의 연속’이라고 하였다. ‘케이트 살렌과 에릭 짐머만은 <놀이의 규칙>에서 ‘플레이어들이 규칙이 정해진 인공적인 갈등에 참여하여 측정 가능한 결과물을 내는 시스템’이라고 하였다. [34p]

위는 게임의 정의에 대한 레퍼런스들이다.

…뇌가 새로운 경험을 갈망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뇌는 보통 새로운 데이터를 갈망한다. 새로운 데이터만이 패턴을 갱신하는 데 필요한 전부다. [62p]

플레이어의 표정으로 나타나는 감정을 네 가지, 즉 어려운 재미, 쉬운 재미, 상태 변화, 사람 요소로 분류했다.(역주: 상태 변화는 게임에 성공하고 실력이 늘 때 느끼는 재미, 사람 요소는 다른 사람과 함께 게임을 하며 느끼는 재미를 가리킨다) [110p]

샤덴프로이데(고소함), 피에로(우쭐함), 나체스(흐믓함), 크벨(뿌듯함), 사회적 행동 [112p]

창작자의 소명은 이런 사람들에게 변화에 적응할 도구를 제공하여 세상이 바뀌고, 문화적 변화의 조류가 휘몰아칠 때 안락 의자에서 나와 인류가 계속 진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218p]

나는 우리 서비스에 게임성을 조금씩 넣으려고 하고 있고 이 책에서 얻은 몇가지는 좋은 영감을 주었다.

착한 수학

지앤선 출판사 김지영 편집장 님의 소개로 알게 된 책. 이 책의 제목은 훼이크고, 진정한 제목은 소제목인 ‘A geek’s guide to the beauty of numbers, logic, and computation’이다. 즉, 수학에 관심이 없다면 접근하기 어려운 책이다.

다행인 점은 저자도 나와 같은 프로그래머라는거고 내가 수학 관련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이해하는게 어렵지는 않았고 공감대도 꽤 있었다.

하지만 나 같은 정도의 교집합이 없다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꽤 노력이 필요할거다. 그럼에도 책의 목적은 일관되게 ‘어려운 지식을 가벼운 어조로 설명하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가 블로그에 써왔던 글을 모아서 정리한 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제가 어렵기 때문에 책의 70%는 쉽게 종이가 넘어가지 않는다.

놀라운 점은, 이 책의 번역은 깜짝 놀랄 정도로 훌륭하다는거다. 전문적인 내용을 오류없이 번역하고 있고 문체도 매끄럽다.

이 책은 알면 좋은 내용(예: 튜링머신 등)은 재미있게 설명했고 어려운 내용은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수학에 그 자체에 대한 훌륭한 교양서다.

나눗셈은 양에 기초한 개념이다. 그러므로 ‘X를 Y로 나누면 얼마인가?’하는 질문은 ‘Y개를 취할 때 총합이 X가 되는 적당한 양이 얼마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39p]

위는 불능에 대한 좋은 설명이다.

논리는 기계적인 추론을 위한 시스템이다. 논리는 중립적인 기호 형태로 주장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고, 이 기호 형태를 가지고 주장이 유효한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이다. 논리에서 중요한 것은 의미가 아니다. 대신 주장을 구성하는 추론의 과정이 얼마나 잘 연결되는지가 중요하다. [93p]

논리에 대한 좋은 정리.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실연당할 때 한 번쯤은 낚여서 산다는 ‘사랑의 기술‘의 저자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책이다. 물론 난 이번에는 안낚였다.

이 책을 구매했던 이유는, 심리학 서적 하나 읽을 생각에 서점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책의 크기가 딱 좋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문고판 사이즈에 가까울 정도로 작고 얇은 크기다.

전체적으로 번역 품질은 껄끄럽다. 앞 부분은 여러번을 반복해서 읽었고 뒤에는 수월하게 읽혔는데, 그 이유는 번역 때문도 있지만 글의 논조 때문도 있다. 앞부분은 자신의 심리학적 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 여러 주변 상황을 설명하고 비판하는데에 많은 양을 할애하고 있다. 정작 주제가 희미해져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호한 편이다.

그러다가 중반에 그 모든 해결은 ‘사랑’이라고 정의하면서 빠른 호흡으로 글이 나아가고, 그 후에 ‘억압’이나 ‘자아찾기’ 같은 원래 말하고자 했던 키워드가 나오면서 (아주) 빠르게 글이 나아간다.

많은 정신의학자들은 – 정신분석학자들 역시- 결코 너무 슬프거나 너무 분노하거나 너무 흥분하지 않는 ‘정상적’ 인격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들은 ‘유아적’ 혹은 ‘신경증’과 같은 단어를 이용해 ‘정상’인의 전통적 모델에 맞지 않는 인성 유형이나 특징들을 비난하였다. [93p]

위 문장에 동의하는게, 우리나라의 경우 어린 시절에는 ADHD를 과잉 진단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강박증을 과잉진단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이해가는게 자살률 1위의 나라에서는 걱정이 앞서긴 한다.

어떤 아이에게 매일 학교 가는 게 좋으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물론이죠!”라고 대답한다면 의심스럽다. 물론 학교에 가고 싶을 때도 많겠지만 놀거나 다른 짓을 하고 싶을 대도 있을 것이다. 아이가 ‘나는 매일 학교에 가고 싶다’고 느낀다면 그 아이가 규칙적인 등교에 대산 자신의 거부감을 억압했을 가능성이 있다. [133p]

‘에이 뭐 이런걸 갖고. 작가가 순진하지 않은건가’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이 책에서 말하는 바는 ‘자아란 무엇인가’다.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게 정말 행복한건지 행복을 사회적으로/상황적으로 강요당한건지에 대해서 묻는다. 그에 대한 비유로 ‘레코드판 플레이어가 저는 바이올린을 연주합니다 라고 말한다면, 레코드판 플레이어 외에 모두는 그 플레이어는 그저 바이올린이 저장된 레코드판을 돌릴 뿐이라는 것을 안다’라고 말하는 것에서 정신이 확 들었다.

모든 종류의 모욕과 비하에도 이런 무능력이 나타난다. 이 경우에도 행동은 모욕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무능력과 타인이 옳고 자신은 모욕당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 자발적 감수 사이를 오간다. (…)때로는 상대에게 때로는 자신에게로 향하는 분노에 사로잡힌다. [154p]

위의 문장은 사실 내 얘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를 화나게 하는 말들을 들으면 그냥 웃어넘기지만 뒤늦게 분노할 때가 많다. 나의 정신건강에 늘 좋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사실대로 본다는 것은 그를 투영 없이, 왜곡 없이 객관적으로 본다는 뜻이며, 이는 투영과 왜곡을 낳는 자기 내부의 신경증적 ‘악덕’을 극복한다는 의미이다. (…) 그런 내면의 성숙에 도달한 사람만이, 자신의 투영과 왜곡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사람만이 창조적으로 살 것이다. [190-191p]

에리히 프롬은 자아의 인식에서 출발해서 자아를 순수하게 보는 것에 성공하면 타인도 온전하게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끝으로 그 수준이 되면 자아를 찾고 보다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인간으로 성장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고 있다.

진짜 삶의 첫번째 조건은 감탄의 능력이다. (…) 두번째 조건은 집중력이다. (…) 또 한가지 조건은 회피하지 않고 양극성에서 나오는 갈등과 긴장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193-198p]

이 책의 결론은 위의 세가지다. 즉,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조건이다. 이렇게 써놓으니 이 책의 논거는 그리 단단하지 않고 희미하다는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책 중간중간 말줄임표(…)가 있던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실제로 원서를 축약한건지 원본이 그런건지 설명을 찾지 못했다. 다만 여러 개의 에리히 프롬의 미발표작을 엮어서 낸 것이라고 하는데 이곳저곳에서 따온 글을 엮으면서 논거가 건너뛴 구간을 표시한게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도 번역서의 입장에서 이런 편집은 그리 호감이 가지 않는다. 독자가 꼭 그 말줄임표를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번역자는 독자를 이끄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말줄임표 편집은 독자에게 물음표만 던지고 답을 안한 모양새다.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이 책은 그동안 내가 읽었던 번역 관련 책 중에서 가장 핵심만 요약한 다이제스트판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시 말해, 내가 번역에 대한 세미나를 한다면 이 책으로 골격을 잡은 후 여러 예시를 들 수 있겠다.

그동안 읽은 번역 책들의 거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얇고 가볍다. 얇은 이유는 예시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전에 자세한 책을 읽었던지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너무 간단히 아는 상태에서 다른 책은 지루해했을테니까 말이다.

캐주얼한 번역에 대한 책은 이로써 거의 다 읽었고, 이 다음은 보다 전문적인 내용을 읽을 차례다. 예를 들어, ISO 표준에 대한 것이나 번역학에 대한 전문서적들이다. 원래 없던 목표인데, 기술번역에 대한 세미나를 한 번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올해 말에 한 권 정도는 더 번역을 해도 좋은 경험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번역은 외국어 실력에서 시작하여 한국어 실력에서 완성된다. [10p]

위의 문장은 서론에 나온 말이다. 둘 다 어설퍼서 내가 번역을 할 깜냥이 되는지 걱정이 된다. 더 많은 책을 읽으며 공부해야겠다.

위기 관려 능력이란 미련 관리 능력이나 욕심 관리 능력인 셈이다. [20p]

주제를 잘 선택하자는 말이다. 원본을 잘 잡아야 번역도 잘된다. 원본에 ‘삘’이 꽂히지 않으면 안하는게 낫겠다.

말이 원뜻과 다르게 변질되어 쓰이도록 만든 사회풍토와 제도를 나무라야지 애먼 용어를 탓하면 안 된다. 비판하고 제안하자 그러면 후손들은 더 좋은 표현을 보고 배운다. [74p]

번역자는 늘 보편적인 표현을 궁리해야 한다. 그래야 번역문이 더 오래 사랑받을 수 있다. [81p]

위의 문장은, 아마도 이 책에서 건진 가장 값진 문장이다. 시간을 빠르게 훑는 기술번역이라도 후손들이 더 좋은 표현을 보고 배울거라는 사명감을 가져야겠다.

항공기 조종 견습생에게 계기판은 혼잡하고 두려운 대상이지만 능숙한 조종사에게 계기판은 복잡할 뿐 혼잡하지 않다. 필요한 지식을 습득했기 때문이다. 모르면 혼잡하고 두렵지만 알면 복잡하더라도 두렵지 않다. [98p]

위 문장은, UX 관점에서는 좋지 않은 표현일 수 있지만 사실은 사실일게다. 내가 만드는 수 많은 툴도 사실 뭐…나만 편한 경우가 많다. 나 혼자 숙련자이기 때문이다.

“번역은 사랑과 비슷하다. 무엇이 사랑인지 아는 건 어렵다. 그러나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 아는 건 어렵지 않다.” (translation is like love; I do not know what it is, but I think I know what is not) [141p]

피터 뉴마크(Peter Newmark)라는 사람의 ‘번역 교과서’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우주는 ‘집 우, 집 주’처럼 동의어를 나열한 게 아니라 각기 공간과 시간을 가리키는 동격인 상대어 모음이다. (…) 문장 성분 사이의 격이 자연스럽게 맞추어진 글은 대개 믿을 만하다. [163p]

내가 이 책을 본 후 실제 번역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문장이다. 이 문장을 본 이후로 우리말:우리말, 한자어:한자어 처럼 격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랬기에 활발한 비판도 일어난 것이다. 전에 쓰인 적 없는 한국어 표현을 처음 만드는 건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어려운 일이다. 좁은 문으로 가겠다고 다짐한 번역자는 그 짐을 기꺼이 떠안는다. 성심껏 한국어로 옮긴 번역자의 모자란 지식은 동료 번역자나 꼼꼼한 독자가 채워 주면 된다. 그렇지만 외국어를 그대로 두거나 엉뚱한 외국어로 바꿔치기하면 욕을 먹어도 싸다. [175p]

이 책의 저자가 자주 쓰는 표현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거다. 번역을 일이나 직업이 아닌 도를 닦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번역문을 첨삭하면서 관형격 조서 ‘~의’가 제대로 쓰였는지 유심히 본다. 외국어 투 문장을 양산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182p]

일본어 투 표현인 ‘~에 있어서’는 한국어 문장에 어울리지 않는다. [188p]

주어를 강조하려면 대개 조사 ‘이/가’를 붙이고 술어의 내용을 강조하려면 ‘은/는’을 붙인다. [189p]

나는 ‘~의’ 사용을 의식적으로 자제하는 편이므로 다행이지만, 나의 단점은 ‘~에’로 잘 못 쓸 때가 종종 있다.

번역자는 원문을 수없이 읽어 본 사람이므로 독자에겐 훌륭한 선생이거나 안내자다. (…) 좋은 번역자는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글을 쓰며, 가벼운 표현에 무거운 메시지를 담는다. (…) 번역자는 독자에게 3~4백쪽 본문 내용을 서른 줄로도 설명할 수 있고, 서너 줄로도 요약해 줄 수 있어야 한다. [251-252p]

번역자의 역할에 대해 마음에 드는 표현이다.

건축가 정기용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건축가로서 내 관심은 원래 거기 있던 사람들의 요구를 공간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그는 훌륭한 번역자였다. [262p]

번역자란, 넓은 의미로는 글에서 글로 옮기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직업에서 하나의 의미를 다른 의미로 은유하여 옮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상적인 표현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좁은 의미든 넓은 의미든 어떤 번역자로 남게 될까.

카피책

서점에서 충동구매했는데, 의외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 책은 카피라이터 정철 님의 책으로, 앞으로 한 권은 더 사서 읽고 싶어졌다. 우리 서비스는 대화를 하는 서비스다. ‘바로’라는 부엉이 아바타가 있고 이를 통해 유저들이 친밀감을 가지고 대화를 한다. 이를 만드는데 많은 영감을 얻었다.

상품을 보지 말고 그 상품을 사용할 사람을 보십시오. [213p]

참 당연한 말인데 이 관점에 따라 만들어지는 결과물이 다름을 느낀다.

기억해두십시오. 소비자가 가장 열광하는 건 사랑도 우정도 애국도 애족도 애향도 아닌 내 이익입니다. [235p]

위의 말은 사실이다. 나는 우리 서비스가 한없이 착해빠진(?) 서비스로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앞으로 좀 더 직설적으로 다이얼로그를 생각해야겠다.

단발은 그럴듯한데 캠페인으로 묶기 어렵다면 미련 없이 포기하십시오. 캠패인으로 엮을 수 있는 아이디어만 생산하겠다고 생각해버리십시오. [313p]

사용자에게 하나의 일관된 이미지를 주려면 동일한 콘텍스트를 꾸준히 심어줘야 한다. 이번 강의실 기획에 이에 대한 내용을 넣어야겠다.

피플웨어

이 책은 번역품질이 아주 나쁘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아주 나쁘다.

역자 자신이 한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번역 품질이 안좋고 ‘클린 코드’ 같은 유명한 책도 번역했는데 안읽어봤지만 서점가서 먼저 한 챕터를 다 읽은 후에 판단을 해야할 것 같다. 여하간, 이 두께에 이 좋은 내용이 이렇게 읽기 어렵도록 직역이 넘치게 번역된 것은 뭔가 대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번역품질에 비해 내용은 아주 훌륭하다. 특히 스타트업이 겪고 해볼만한 많은 것들을 제안하는데, 오히려 큰 조직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겠다. 왜냐하면 큰 조직에서는 어차피 본인의 의사결정에 한계가 있고 행동범위에도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본문 중 예를 든 ‘주변 유명 샌드위치 가게 요리사를 데려와서 사무실 안에서 카트를 마련하고 서빙했다’는 것을 S그룹 과장이 실천하기에도 의견개진하기에도 어렵지 않겠나.

어쩌면 뻔하고 뻔한 이야기만 나열된 ‘일본 아날리스트들의 트렌디한 비즈니스 도서’와 비슷하다고 치부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은이는 단지 인용이 난무하고 그럴싸한 논리만 말하는게 아니라 실제로 실험과 검증과 분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만큼 좀 더 객관화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건축 관련 도서를 많이 읽어서인지 이 책에서 공간에 대한 내용이 나의 주의를 끌었다. 우리 회사는 밖과 안으로 나뉘어있는데 공교롭게도 퇴사자는 매우 높은 확률로 밖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통계가 꼭 이 책에 나온 여러 설명과 일치하는지는 모르지만, 연관성이 어느정도는 있다고 생각한다.

통일성을 강요하는 문화는 관리자가 불안하다는 증거다. 자신감이 있는 관리자는 팀원들이 머리를 자르든 넥타이를 매든 신경 쓰지 않는다. 관리자의 자긍심은 팀원들의 성취에만 좌우된다. [122p]

그동안 일하면서 복장 개념 없기로 유명했는데 이에 대해서 나에게 코멘트 하는 리더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세대의 기술은 다음 세대의 환경이다. [141p]

다음 세대의 레거시…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단어가 나와서 좀 놀랐다. 좋은 말이다.

호손이펙트(Hawthorne effect): 환경변수와 생산성을 연구하는 중, 조명을 낮추자 생산성이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조명을 꺼버리면 생산성이 하늘을 찌르겠다고 추측했다. 사실 조명 변화가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은 없었다. 뭔가 변경되는 자체가 중요했다. [233p]

위 부분은 내가 이 책에서 건진 가장 유쾌하고 의미있는 내용이다.

혼돈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다. 피해갈 방법은 없다. (…) 인간 감정의 흥미로운 특징은 혼란이 힘겨웠을수록 새 상태를 더 가치 있게 인지한다. 물론 목표에 도달했을 때만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사티어 모델이 중요한 이유는 혼란이 변화의 중요한 단계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269p]

사티어 변화 모델은 기존 상태가 이질적인 요소에 의해 혼란이 만들어지고 이를 사고 전환을 통해 실행과 통합을 거치면 새로운 상태에 도달한다는 사회 조직의 진보과정에 대한 모델이다.

대단히 자발적인 성취가를 데려왔다면 “업무를 직접 정의하십시오”라는 조건만으로도 충분하다. [299p]

내가 이 유형에 속한게 아닐까 진지하게 공감했다. 어느 조직에 있든 일을 찾아서 만들어내고 해내는 것이 내가 잘해왔던 것이고 이를 나의 커리어 무기로 하면 어떨까? 나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줄 알고 기술을 만들 줄 아니까 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자발적 성취가’ – 내가 품고 싶은 키워드다.

지적자본론

2017년 새해 첫 독서. 책은 얇고 작아서 빠르게 읽힌다.
문득 어디선가 추천사를 읽었고 독서 목록에 기록해뒀다가 서점에 갔을 때 눈에 띄는 위치에 있어서 집어들었다.

성공을 거둔 작가가 다소 투박하지만 직접 타이핑쳐서 쓴 듯한 문장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만든 CCC, 츠타야 서점, T포인트 모두 가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다만 이 기획자(책에서는 디자이너와 기획자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가 바라보는 몇가지 지향점은 나에게 좋은 영감을 주고 나 역시도 기존부터 주장해왔던 것을 재확인한다는 점에서 좋았다.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상품은 용도만 충족하면 되었다. (…) 세컨드 스테이지는 인프라가 정비되고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다. 플랫폼에서 상품을 선택하고 그 플랫폼마저도 넘쳐난다. (…) 서드 스테이지는 제안 능력이 있어야 하는 시대다. 제안을 가시화하는 능력이 없다면, 또 디자이너가 되지 못하면 고객 가치를 높이기는 어렵다. [50p]

위의 문장에서 지금은 세컨드 스테이지 같다. 서드 스테이지를 위해서 개발자들은 추천 엔진(suggestion algorithm) 같은걸 연구하는데 그 이상이어야 한다고 본다. 보통 이런저런 ‘제안하는 로직’만으로 인공지능/머신러닝을 말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부러 그 분야의 아웃사이더를 담당자로 앉히는 경우가 많다. 이노베이션은 언제나 아웃사이더가 일으킨다. [71p]

우리 회사는 교육에 아무 관심없어 하거나 천대시(?)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은 보통의 의견에 반대 의견을 자주 내는데, 나는 그런 의견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브랜드 파워는 대차대조표에 기재되지 않는다. (…) 지적자본을 고객가치로 전환시키지 못하면 (…) 보물을 손에 움켜쥐고 썩히는 꼴이다. [131p]

올해 내가 회사에서 가장 주력할 분야다. 이 책은 금융자본의 시대에서 지적자본의 시대로의 이행을 꾸준히 설파하고 있다. 나 역시 동의한다.

효율과 행복은 다르다. 효율은 확실히 편리하고, 편리는 대부분의 경우 쾌적함을 이끌어 낸다. 단, 쾌적함과 행복은 등가가 아니다. (…) 어쩌면 효율과 행복은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지적자본이 대차대조표에 실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상쾌함과 고양감은 숫자로 측정할 수 없다. [141-142p]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든다. 나는 제품에서 주구장창 상쾌함을 추구해왔고 그것은 분명 효율만 생각하거나 트렌디한 것과는 다른 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