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웨어

이 책은 번역품질이 아주 나쁘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아주 나쁘다.

역자 자신이 한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번역 품질이 안좋고 ‘클린 코드’ 같은 유명한 책도 번역했는데 안읽어봤지만 서점가서 먼저 한 챕터를 다 읽은 후에 판단을 할 것 같다. 여하간, 이 두께에 이 좋은 내용이 이렇게 읽기 어렵도록 직역이 넘치게 번역된 것은 뭔가 대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번역품질에 비해 내용은 아주 훌륭하다. 특히 스타트업이 겪고 해볼만한 많은 것들을 제안하는데, 오히려 큰 조직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겠다. 왜냐하면 큰 조직에서는 어차피 본인의 의사결정에 한계가 있고 행동범위에도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본문 중 예를 든 ‘주변 유명 샌드위치 가게 요리사를 데려와서 사무실 안에서 카트를 마련하고 서빙했다’는 것을 S그룹 과장이 실천하기에도 의견개진하기에도 어렵지 않겠나.

어쩌면 뻔하고 뻔한 이야기만 나열된 ‘일본 아날리스트들의 트렌디한 비즈니스 도서’와 비슷하다고 치부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은이는 단지 인용이 난무하고 그럴싸한 논리만 말하는게 아니라 실제로 실험과 검증과 분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만큼 좀 더 객관화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건축 관련 도서를 많이 읽어서인지 이 책에서 공간에 대한 내용이 나의 주의를 끌었다. 우리 회사는 밖과 안으로 나뉘어있는데 공교롭게도 퇴사자는 매우 높은 확률로 밖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통계가 꼭 이 책에 나온 여러 설명과 일치하는지는 모르지만, 연관성이 어느정도는 있다고 생각한다.

통일성을 강요하는 문화는 관리자가 불안하다는 증거다. 자신감이 있는 관리자는 팀원들이 머리를 자르든 넥타이를 매든 신경 쓰지 않는다. 관리자의 자긍심은 팀원들의 성취에만 좌우된다. [122p]

그동안 일하면서 복장 개념 없기로 유명했는데 이에 대해서 나에게 코멘트 하는 리더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세대의 기술은 다음 세대의 환경이다. [141p]

다음 세대의 레거시…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단어가 나와서 좀 놀랐다. 좋은 말이다.

호손이펙트(Hawthorne effect): 환경변수와 생산성을 연구하는 중, 조명을 낮추자 생산성이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조명을 꺼버리면 생산성이 하늘을 찌르겠다고 추측했다. 사실 조명 변화가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은 없었다. 뭔가 변경되는 자체가 중요했다. [233p]

위 부분은 내가 이 책에서 건진 가장 유쾌하고 의미있는 내용이다.

혼돈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다. 피해갈 방법은 없다. (…) 인간 감정의 흥미로운 특징은 혼란이 힘겨웠을수록 새 상태를 더 가치 있게 인지한다. 물론 목표에 도달했을 때만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사티어 모델이 중요한 이유는 혼란이 변화의 중요한 단계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269p]

사티어 변화 모델은 기존 상태가 이질적인 요소에 의해 혼란이 만들어지고 이를 사고 전환을 통해 실행과 통합을 거치면 새로운 상태에 도달한다는 사회 조직의 진보과정에 대한 모델이다.

대단히 자발적인 성취가를 데려왔다면 “업무를 직접 정의하십시오”라는 조건만으로도 충분하다. [299p]

내가 이 유형에 속한게 아닐까 진지하게 공감했다. 어느 조직에 있든 일을 찾아서 만들어내고 해내는 것이 내가 잘해왔던 것이고 이를 나의 커리어 무기로 하면 어떨까? 나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줄 알고 기술을 만들 줄 아니까 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자발적 성취가’ – 내가 품고 싶은 키워드다.

지적자본론

2017년 새해 첫 독서. 책은 얇고 작아서 빠르게 읽힌다.
문득 어디선가 추천사를 읽었고 독서 목록에 기록해뒀다가 서점에 갔을 때 눈에 띄는 위치에 있어서 집어들었다.

성공을 거둔 작가가 다소 투박하지만 직접 타이핑쳐서 쓴 듯한 문장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만든 CCC, 츠타야 서점, T포인트 모두 가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다만 이 기획자(책에서는 디자이너와 기획자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가 바라보는 몇가지 지향점은 나에게 좋은 영감을 주고 나 역시도 기존부터 주장해왔던 것을 재확인한다는 점에서 좋았다.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상품은 용도만 충족하면 되었다. (…) 세컨드 스테이지는 인프라가 정비되고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다. 플랫폼에서 상품을 선택하고 그 플랫폼마저도 넘쳐난다. (…) 서드 스테이지는 제안 능력이 있어야 하는 시대다. 제안을 가시화하는 능력이 없다면, 또 디자이너가 되지 못하면 고객 가치를 높이기는 어렵다. [50p]

위의 문장에서 지금은 세컨드 스테이지 같다. 서드 스테이지를 위해서 개발자들은 추천 엔진(suggestion algorithm) 같은걸 연구하는데 그 이상이어야 한다고 본다. 보통 이런저런 ‘제안하는 로직’만으로 인공지능/머신러닝을 말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부러 그 분야의 아웃사이더를 담당자로 앉히는 경우가 많다. 이노베이션은 언제나 아웃사이더가 일으킨다. [71p]

우리 회사는 교육에 아무 관심없어 하거나 천대시(?)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은 보통의 의견에 반대 의견을 자주 내는데, 나는 그런 의견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브랜드 파워는 대차대조표에 기재되지 않는다. (…) 지적자본을 고객가치로 전환시키지 못하면 (…) 보물을 손에 움켜쥐고 썩히는 꼴이다. [131p]

올해 내가 회사에서 가장 주력할 분야다. 이 책은 금융자본의 시대에서 지적자본의 시대로의 이행을 꾸준히 설파하고 있다. 나 역시 동의한다.

효율과 행복은 다르다. 효율은 확실히 편리하고, 편리는 대부분의 경우 쾌적함을 이끌어 낸다. 단, 쾌적함과 행복은 등가가 아니다. (…) 어쩌면 효율과 행복은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지적자본이 대차대조표에 실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상쾌함과 고양감은 숫자로 측정할 수 없다. [141-142p]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든다. 나는 제품에서 주구장창 상쾌함을 추구해왔고 그것은 분명 효율만 생각하거나 트렌디한 것과는 다른 궤에 있다.

 

 

장사는 전략이다

앱서비스나 음식점 장사나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1. 누군가가 와서
  2. 슬쩍 보거나 몇십분 이용해보고
  3. 나가서 다시는 안오거나 또 온다.

그런 점에서 역사가 오래된 음식점 장사에 대한 노하우가 담긴 책은 많은 영감을 준다. 이 책에서 건진 아이디어 또한 많다.

덧붙여, 과거에 ‘샘앤파커스’라는 출판사에서 나쁜 일들이 있었다는 글을 접했다. 소비자의 1인으로서 악덕기업의 물건에 대해 불매하는 행동을 종종 하지만, 책은 정말 어렵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책은 옥시나 남양 같은 대체품 서너개 가운데서 선택할 수 있는게 아닌 지식 그 자체이며 지식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번역의 탄생

번역을 잘 하고 싶어서 읽은 세번째 책, 추천받아서 읽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힘들게 읽은 책이었다.

모든 내용이 너무 진지하고 훌륭해서 한글자씩 떼어다 읽느라 오래걸렸달까.

이전에 읽은 ‘갈등하는 번역‘은 저자와 함께 공부한다는 느낌을 주는 독특한 구성이 돋보였다면, 이 책은 내일 은퇴하는 노교수가 앞에 처음 앉은 나에게 그동안의 모든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가끔씩 숨을 가쁘게 쉬며 가르치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에 영국인이 한국어로 된 책일 많이 번역했다고 가정해볼까요. … 가령 “He said nothing”이라고 쓰지 않고 “Said nothing”이라고 쓰는 영국 작가가 많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67p]

위의 문장이 재미난 이유는, 내가 실제로 영어를 주어를 생략해서 쓸 때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시 읽을 때 고치곤 하지만 손 가는대로 머리 가는대로 쓸 때는 종종 주어를 빼먹는다.

영어 동사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달랑 한국어 동사 하나로만 번역하지 말고 한국어 부사를 덧붙일 수 있으면 과감히 덧붙여라. [120p]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위에서 언급한 부사의 재발견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번역한 글에서는 순우리말 부사를 등장시키려고 애썼다. 예를 들어, “수 십년간 개발자들은 이벤트에 대해서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벤트소싱이 딱히 쓸모있지 않다고 생각해도 괜찮습니다.” 등이다.

이제 번역 관련 서적은 여기까지 읽고 또 다른 주제의 책을 읽어야겠다. 이 책은 정보가 너무 많아서 내가 직접 번역하면서 체득하기엔 경험이 더 필요하다.

장사의 신

이자카야 운영에 대한 책.

  •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것은 앱서비스와 유사한 결을 가지고 있다.
  • 동네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유저가)
  • 우연히 광고나 관련 글을 페이지를 보고 (=길가에 메뉴판을 보고)
  • 호기심에 문을 열어서 들어가고 (=어떤 앱을 보거나 다운받고)
  • 메뉴판을 보거나 주문해서 몇 점 먹어보고는 (=내비게이션 여기저기를 누르거나 뻘글을 써보고)
  • 걸어나간다. (=앱을 닫는다)
  • 나중에 다시 가거나 (=또 열어보거나)
  • 다시는 안간다. (=지워버린다)

앱서비스에 비해 동네 음식점은 1000년도 넘은 비즈니스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의외로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모든 문장, 모든 장을 읽으면서 ‘우리에게는 어떨까’를 생각할 수 있어서 즐거운 책이었다. 인터넷에 흔히 돌아다니는 UX나 모객 관련 글, 심지어 뭔가 과학적인 Google Analytics를 활용한 글만으로는 피상적으로 느꼈던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보다 알맞은 시선을 가질 수도 있게 되었다.

이 책에서 결국 가지고 있는 키워드는 단 하나다 – ‘대화’. 끊임없이 대화를 하라는거다. 리텐션이라는 고상한 단어 하나 없어도 더 와닿는 대화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또한, 대기업에 대항하는 작은 곳만의 매력도 한 번 더 깊게 생각할 수 있게 한다.

갈등하는 번역

번역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학습을 하고 싶어서 서점에 가서 책을 찾던 도중 접어든 책이다. 두께는 적당히 두툼한 수준으로, 416페이지 정도다. 대상 독자는 번역을 직업이자 전공으로 하고 싶은 사람들로, 어찌보면 내용은 번역학 개론이기도 하다.

저자는 꾸준히 ‘커뮤니케이션 번역’, ‘커뮤니케이터로서의 번역가’라는 표현을 쓰는데, 번역자의 역할을 매우 능동적인 위치로 두고 있다. 저자와 시간차이를 두고 있는 또다른 저자의 위상과도 같다.

이 책에서 가장 도움을 준 장은 ’22장. 독자를 낚는 그물을 짜는 기술: 표층결속성’과 ’26장. 혼돈 속에서 탄생한 질서: 한국어의 기둥 은/는’이다. 22장은 문장을 시각화한 것이 인상깊고, 26장은 구정보/신정보로 나눈 후 그에 따라 단어와 절의 배치를 가르친다.

또한 이 책의 가치는, 무엇이 좋은 번역이고 어떤 글은 왜 안읽히는지에 대해 정량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표를 제시하면서 각 번역문에 대해 비교한 것은 글을 보다 논리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우리가 이런 작업을 대화에서 능숙하게, 어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해낼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의 즉각적인 피드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에서는 그러한 피드백이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글은 혼자 쓰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자기 생각을 늘어놓으면 저절로 글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기나 개인 블로그에 끄저이는 단편적인 감상 같은 것들은 물론 그렇게 써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런 글을 쓰는 것이 ‘글쓰기’에 그다지 도움 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246p]

블로그를 열심히 하면 뭔가 글쓰기가 나아질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돌아보게 하는 글이다.

번역은 언어를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목표 독자를 바꾸는 작업이다. 다시 말해 번역이란 가상 독자를 바꿔 글을 다시 쓰는 작업이다. 이것이 바로 번역이다! [296p]

글에서 거의 유일하게 느낌표를 사용한 문장이다.

화제는 동사를 선택하는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글의 전개 방향을 알려주는 깃발과도 같다. [154p]

이 책에서 배운 내용은 화제어, 구정보/신정보다.

원래 이 책을 읽을 후 ‘번역의 탄생’이라는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너무 많은 내용을 배워서 (마치 한 학기 강의를 들은 것처럼) 한동안 말랑말랑한 내용의 책을 읽어야겠다.

이 책을 읽은 후 문제라면, 기존에 취미로 하던 번역에 대해 한 문장도 쉽게 나가지 못하는거랄까.

 

War of IT

김영욱 부장님의 컬럼을 모아서 낸 책으로, 전쟁의 역사와 IT의 역사/트렌드를 앞뒤로 병치한 독특한 구성의 책이다.

음악은 하나의 앨범을 트랙1부터 끝까지 듣는 것을 권하듯 책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리 컬럼을 모아놨다고 해도 하나의 책으로 엮이는 것은 하나의 온전한 이야기다.

이 책의 묘미는, 각각의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편집의 의도를 읽는 것이다. 첫 장은 살수대첩으로 시작하고 마지막 장은 명량해전으로 끝난다. 책의 시작과 끝을 전쟁사에 획을 그은 우리나라의 두 전투로 열고 닫은 것이 인상 깊다. 아마 지은이(또는 편집자)는 우리의 승전기록+우리의 산업에서의 승리로 열고 닫고 싶었겠지만 아직 우리는 그만큼 승리를 선언하기엔 미흡하다.

글쎄, 어쩌면 게임 ‘리니지’의 저력(?: 음성적인 캐시템 거래가 있다해도 이만큼의 경제생태계를 만들고 아직까지 견고하게 유지하는 게임은 없다)이나 e스포츠의 성지를 예로 들어도 괜찮았을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정작 잡스 본인은 아멜리오의 퇴진에는 동의했지만 정작 자신이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은 거부했다. (…) 기존 이사회의 퇴진을 요구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명의 이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퇴진했다. (…) 일할 수 있는 준비가 끝나자 잡스는 어지럽게 펼쳐져 있던 애플의 제품군을 빠르게 정리해 나갔다. [52p]

유명한 일화인데, 대표 자리를 거부했고 자신을 향한 완벽한 셋업이 될 때에서야 올랐다는 것은 두 수 앞을 내다본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이럴 때 낼름 받는데 말이다.

짐 콜린스의 책 “How the Mighty Fall(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는 소위 잘 나가던 기업이 몰락하는 다섯 단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107p]

1단계: 성공에 도취된 자만
2단계: 원칙없는 확장
3단계: 위험 신호 무시, 긍정적인 데이터를 맹신
4단계: 구원을 위한 몸부림
5단계:시장에서 점점 멀어짐

우리는 지금 어디인지, 원칙없이 확장하지는 않았는지, 위험 신호를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봐야겠다.

IT생태계에서는 어제 내린 눈과 같아서 오늘의 상황은 어제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 [304p]

재미있는 표현이다.

끝으로, 이 책에서 양수열 님의 추천사는 내가 여지껏 읽었던 추천사 중 가장 진중하면서도 친절한 어조로 좋은 울림을 줬다. 언젠가 내가 추천사를 쓸 일이 있을 때 나중에 다시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